전략부서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비전 수립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HR조직(인사/조직문화/교육)이 비전 수립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함께 참여해야 한다. 종종 HR부서가 전략부서에서 완성될 비전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비전이 나오면 HR부서는 직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고 내재화를 시켜야 하는 부서이니 새로운 비전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전략부서가 단독으로 주관하고 HR부서는 결과를 기다리는 비전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전략부서의 참여가 없어 방향성과 구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비전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략과 HR은 CEO의 전략적 파트너다"
전략부서나 HR부서가 단독으로 비전 수립을 진행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첫째, 화려하고 멋진 문구의 나열이 될 수 있다. 화려하고 멋진 비전 슬로건은 기업의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카카오의 'Connect Everything(새로운 연결, 더 나은 세상)', 안랩의 '안전해서 더욱 자유로운 세상'과 같이 명확한 방향성이 제시된 좋은 비전 슬로건이 있다. 하지만 최고의 기업이 되고... 글로벌 리더가 되고... 선도자가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열광시키고... 비전 슬로건은 멋진 대 달성할 큰 목표가 없으면 구체성이 없는 비전이다. 종종 전략이나 HR 담당자들에게 "이번 비전에는 매출이나 이익과 같은 정량적 목표는 제외하기로 했다"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유는 "괜히 정량적 목표 제시했다가 달성하지 못한 경험이 있어 경영진이 부담스러워한다"라는 얘기를 한다.
"가슴 설레는 비전과 뜬구름 잡는 비전은 연관이 전혀 없는 개념이다"
비전을 달성하려면 거기로 가기 위한 핵심적인 결과물(목표)가 있어야 한다. 기업에 있어 성장과 발전에 대한 구체적 목표가 없는 비전은 성립하지 못한다. 매출, 이익, 시장 등 영역에서 비전 달성을 위한 목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도전적인 큰 목표를 비전으로 정하지 못할 수 있다. 비전은 도전적인 큰 목표가 아니라면 세울 이유가 없다. 비전 세우지 말고 위로와 격려를 하면 된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 그러다 보면 어떻게 되지 않겠어. 잘 될 거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일하자" 필자는 과거에 비전을 '기한이 있는 어음을 발행한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요즘 어음 거래가 거의 없으니 쓰지 않는 표현이다) 비전은 무엇인가 돌려주고 돌려받아야 할 것이 있다. 비전에는 사업목표와 직장목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직장목표는 중요하다. 급여, 복지, 조직문화, HR제도, 근무환경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목표가 담겨야 한다. 앞으로 5년 기한의 비전을 정한다고 할 때 대표적인 항목인 직원들이 원하는 급여는 어느 수준일까? 1.5배를 현실적이라고 한다면 2배는 도전적인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 1.5배에서 2배의 보상을 받으려면 사업은 어느 정도 규모로 성장해야 할까? 직원들은 상식적으로 회사가 2배는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업목표를 정할 때 직원들이 쉽게 외형 2배 성장을 합의하는 이유다. 전략부서에서 5년 후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각종 근거와 분석자료를 통해 외형 목표를 정하는 경우 2배 성장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전략부서에서 감각적으로 2배를 설정해도 이후에 임원, 리더, 직원들과 공유할 걱정에 2배 이하에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100여 개 조직의 비전과 목표 수립을 도우면서 직원들이 참여한 비전 수립 워크숍의 결과가 경영자나 전략부서가 생각한 목표보다 적은 경우를 보지 못했다. 전략부서가 목표를 세우면서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설득하지?"라고 생각한 목표는 직원들이 참여한 비전 수립 워크숍의 목표보다 큰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합의하는 목표는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목표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목표는 세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1. 일상적 목표 - 현재 사업 환경과 추이를 보면 예측이 되는 목표
2. 과제적 목표 - 문제나 과제를 해결하면 달성할 가능성이 있는 목표
3. 도전적 목표 - 조직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상의 조건을 만들었을 때 이룰 수 있는 목표
전략부서가 세울 수 있는 목표는 1과 2 수준까지다. 연간 단위 목표, 분기 단위 목표, 월 단위 목표라면 1과 2 수준의 목표를 만들면 되지만 '비전'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3 수준의 목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전에 포함된 목표는 70~80% 정도를 달성하면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비전 수립에 참여한 직원들이 목표를 낮게 설정하고 합의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이유는 하나다. 직원들이 비전 수립에 공감대가 낮은 때이다. 숙제처럼 그 자리에 앉아 빨리 워크숍이 끝나길 바라는 경우다. 비전 수립에서 HR부서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비전 달성을 위한 실행력을 확보할 수 없다. 실행력을 확보하려면 내재화 즉, 비전을 달성해야 할 목표라고 받아들이고 전 조직이 매진해야 한다. 전략부서가 만들어 제시하는 비전은 직원과 단위 조직에 의무와 부담감을 안기는 경우가 있다. 리더들이 비전을 대할 때마다 부담감을 느끼고 경영자가 조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비전은 비전인데 비전이 아니게 된다. 비전을 내재화하여 신념이 되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스스로 만들게 하는 것이다. 비전 수립에 참여하여 고민하게 하고 말하게 하고 토론하게 하고 합의하게 만들면 회사의 비전은 나의 비전이 된다. 비전 달성 실행력 확보에 가장 좋으면서도 올바른 방법은 직원들의 참여다. HR부서는 비전 수립 후 내재화를 통해 실행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전략부서나 HR부서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비전 수립은 지양하면 좋겠다. 비전 수립은 중장기 목표 설정이라는 측면에서 전략부서의 참여가 필요하다. 한편 사람을 움직이는 실행의 측면에서 조직문화 활동이다. 전략부서나 HR부서가 초기부터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비전이 수립된 후 실행을 위해서 전략부서가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HR부서는 실행력 강화를 위한 조직문화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전략부서와 HR부서가 협업할 때, 비전 수립과 내재화에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글. 정진호소장(더밸류즈 정진호가치관경영연구소)
※ 이 글은 필자가 2020년 2월 22일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